바빌론: 영화판의 광기와 환상을 3단계로 해석하다

영화 ‘바빌론’의 광기와 환상이 어우러진 파티 분위기
영화 ‘바빌론’의 광기와 환상이 어우러진 파티 분위기를 표현한 이미지

데이미언 셔젤의 『바빌론』은 절대 조용하거나 은근한 영화가 아닙니다. 폭발적인 오프닝부터 환각적인 엔딩 몽타주까지, 이 영화는 관객을 1920년대 할리우드의 광기 어린 세계로 끌어들입니다. 그곳은 끝없는 야망과 파괴적 쾌락, 그리고 눈부신 환상이 공존하는 곳이죠. 그러나 이 화려함과 기괴함 아래에는 영화 산업이 약속하고, 요구하며, 결국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층위 있는 통찰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바빌론』을 세 단계로 나누어 해석합니다. 광기의 스펙터클, 환상의 비판,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화라는 매체가 품은 철학적 아이러니에 대한 성찰입니다.

1. 광기의 기계: 과잉이 곧 정체성

첫 번째 해석은 감각의 폭풍입니다. 코끼리가 파티장을 누비고, 마약과 광란의 향연이 벌어지고, 감독은 신경 쇠약 직전에 소리를 지릅니다. 셔젤은 과잉 자체를 영화의 주제이자 스타일로 삼습니다. 이건 단순한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감각적 공격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핵심입니다.

『바빌론』 속 할리우드는 광기를 연료 삼아 움직이는 기계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선 그 광기를 이기거나, 아예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단순히 이 광기에 빠진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화신이 됩니다. 그들의 부상과 몰락은 결국 할리우드가 원하는 스펙터클의 이면을 반영합니다. 광기는 부작용이 아니라 핵심 동력입니다.

셔젤이 시각적, 감정적 과잉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연출 기교가 아니라, 영화 산업이 불안정함을 상품화하는 방식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무너지지 않으면, 흥미롭지도 않다.

2. 환상이라는 통화: 명성과 자아의 불안정성

두 번째 층위는 헐리우드의 핵심 통화인 ‘명성’입니다. 영화는 명성을 마법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그 이면의 괴물성을 드러냅니다. 한순간 무명의 인물이 신격화되다가, 대중의 환호가 멈추는 순간 가차 없이 버려집니다.

영화는 자아를 어떻게 상품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넬리는 “예측 불가능한 야생성”으로 찬사를 받다가, 그 특성이 문제로 지목되는 순간 버려집니다. 잭의 매력은 무성 영화 시대의 자산이지만, 유성 영화로 시대가 바뀌자 한순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셔젤은 헐리우드의 잔혹한 진실을 폭로합니다. 너의 가치는 네 환상이 얼마나 잘 팔리는가로 결정된다.

비극은 명성이 덧없다는 점뿐 아니라, 그것을 좇는 이들이 카메라 앞에서의 자신과 진짜 자신 사이에서 점차 혼란을 겪으며 결국 ‘누구였는가’를 잃어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바빌론』은 욕망이 반사되는 거울의 방, 즉 ‘꿈의 공장’을 환각적이고도 잔혹하게 그려냅니다.

3. 종교로서의 영화: 허구를 통한 초월

세 번째이자 가장 깊은 해석은 철학적 차원입니다. 셔젤은 광기와 환멸을 묘사하면서도, 영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외합니다. 마지막 몽타주는 영화사 전체에 대한 러브레터이며, 『바빌론』 속 인물들의 비극을 더 큰 영화의 역사 안에 연결시키는 장치입니다.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감정을 보존하고, 시간을 멈추며, 기억을 변형시키는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파괴적이면서도 신성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인생을 망가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멸의 존재로 남게도 합니다. 거짓말이지만 진실을 말하는 방식. 이러한 시선에서 보면 『바빌론』은 단순한 할리우드 비판이 아니라, 그 비극마저 품은 영화 예찬입니다. 셔젤은 묻습니다. 이토록 독성이 강한 시스템도 신성할 수 있는가?

4. 참여의 대가: 무엇이 남는가

『바빌론』은 과잉과 스펙터클을 눈부시게 그려내지만, 동시에 그 광기를 견디는 대가를 조용히 애도합니다.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단순히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져버립니다. 영화 산업이라는 기계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체성, 정신, 그리고 때로는 생명 자체를 대가로 치른다는 의미입니다. 주인공 매니(디에고 칼바)는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결국은 자신의 믿음마저 흔들린 채 변화합니다.

이 층위는 생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계 안에서가 아니라, 그 바깥에서. 『바빌론』은 이렇게 묻습니다. 바빌론에서 걸어나온 사람 중에 온전한 이가 있었던가? 영화는 암묵적으로 말합니다.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조차 이 산업이 남긴 유산일지 모릅니다.

5. 감정의 진실을 담은 허구의 역사극

『바빌론』은 명백히 픽션입니다. 실제 초기 할리우드를 바탕으로 했지만, 완전히 재구성된 세계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정서적 진실을 정확히 포착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부정, 무대 뒤의 절박함, 그리고 ‘집단적 꿈’이라는 마법.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환각입니다. 그러나 그 환각 속에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진심이 존재합니다.

셔젤의 연출은 극단적이기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그는 분명 단순한 해답, 깔끔한 결말, 도덕적 명확함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그 극단성 덕분에, 이 영화는 스스로 묘사하는 대상—즉 ‘영화’—그 자체를 거울처럼 비춥니다. 어지럽고, 조작적이며, 동시에 마법 같은 존재.

결론

『바빌론』은 쉽게 소비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크고, 혼란스럽고, 때로는 광기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혼돈을 견딜 수 있다면, 매우 희귀한 영화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구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숭배의 이야기. 할리우드라는 불지옥을 통과한 끝에 남는 것은 바로 ‘영화에 대한 예찬’입니다.

데이미언 셔젤은 이 혼란을 정리하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그림’으로 남깁니다. 그리고 그 그림 속에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아름다움, 광기, 그리고 환상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바빌론』은 불편하지만, 그만큼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여러분은 『바빌론』을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광기였나요, 환상이었나요, 아니면 전혀 다른 것이었나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 나눠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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